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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리뷰

랭스로 되돌아가다-디디에 에리봉(2021.01.11)

by jb213 2021. 8. 29.

계급과 개인의 정체성에 대한 이론서 겸 에세이다.

철학책 관련해서 참고하는 유저가 이 책을 좋게 평가해서 궁금했다.

 

이 책은 꽤 오래 전에 출판(2009년)되었는데 한국에는 조금 늦게 번역된 편이다.

책은 총 5장으로 이뤄져있다.

각 장마다 에리봉은 자신의 고향 랭스로 돌아가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를 어린시절의 경험을 공유함과 함께 각종 철학/문학 이론 및 예시를 제시한다. 

 

읽으면서 놀랐던 점은 프랑스의 노동자 계급의 생각이란 게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책에서 읽었던 많은 구절들이 내가 아는 한 동창의 사연과 매우 유사하게 겹쳤다.

거의 노동자 계급이었던 그 동창이 에리봉과 같이 공부에 눈을 뜨고 그 계급과는 조금은 다른 삶의 길을 걸어가겠다고 다짐하면서 겪는 부모님과의 마찰. 특히 이 동창의 경우 어머니와의 마찰이 심했다. 

어머니는 아마 고등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동창의 경우 고급 교육, 그리고 더 높은 학위를 원했기 때문에 어머니는 불만을 품고 항상 기분나쁜 대화를 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그를 심리적으로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에리봉 또한 더 높은 지식을 추구하고 지식 노동자로서 사는 삶에 대해 어머니와 마찰이 있었는데 이런 부분에서 그 동창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에리봉이 아버지와 노동자 계급의 하드웨어적 가치-남자는 으레 운전을 해야하고 아내가 바람피는지 감시해야 하며 철저한 보수주의로 사회를 바라보며 최대한 거칠게 살아가야 하는 등-에서 마찰이 일어났고 어머니와 그 소프트웨어적 가치-교육은 최소한의 레벨에서만 그치고 철학과 문학 같은 당장 돈을 벌지 못하는 지식은 쓸데 없으며 지식보다 공장에 취직해 성실하게 돈을 벌어 하루하루를 생활하는 등-에서 마찰이 일어났다. 에리봉의 입장에서는 노동자 계급을 전방위적으로 거부하고 부정하고 싶었던 게 이해가 된다. 모든 면에서 그는 노동자 계급의 선호하는 사회문화적 생활양식을 좋아하지 않는데 그것을 굳이 참으면서 살아야 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리봉은 아버지의 탄생부터 어머니의 탄생까지 훑어가면서 자신과 자신 주변의 탄생을 정리하는 과정 속에서 여태껏 노동자 계급을 자신의 정체성에서 지워버린 자신의 태도를 반성한다. 자신이 그토록 벗어나고자 했던 노동자 계급은 알고보면 마크나 흔적처럼 지워지지 않는 자신의 자산이고 그 자산을 부정함으로써 지금의 자신이 있을 수 있게끔 아버지와 어머니가 감내한 희생을 모두 없는 것으로 치부했기 때문이다. 

 

그가 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하며 새벽까지 각종 대가들의 이론을 섭렵하며 책을 감상할 동안 자신의 어머니는 그의 학비를 대느라 늙은 나이에도 힘들게 돈을 벌었어야 했다. 그의 어머니 또한 은연중에 자신이 가보지 못한 고등 교육 이상으로의 길을 에리봉이 걷게 된다는 것에 대한 대리만족과 한편으로는 이상한 이질감을 느끼며 그의 꿈을 지원했다. 에리봉의 성 정체성 때문에 극우주의이고 노동자 계급인 아버지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지만 이후에 그가 업적을 세우고 유명해져 프랑스 TV에 나오는 모습을 보고 그를 자랑스러워했다. 에리봉은 아버지가 노동자 계급의 비난을 받을 각오를 하고 아들을 자랑스러워했단 얘기를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어머니에게서 듣게 된다. 

 

책 중간 중간 나오는 계급에 대한 에리봉의 생각이 이해하기 쉬워 좋았다.

 

이 지점에서 나는 내 글쓰기 방식이 사회적으로 위치 지어진 외부성을 가정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의식하고 있다. 즉 내가 이 책에서 기술하고 복원하려 애쓰는 삶의 유형들을 늘 살고 있는 사람들과 계층에 대해 사회적으로 외부에 자리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나는 그들이 내 책의 독자가 될 개연성이 거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우리는 노동자층에 대해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에 관해 말을 할 때는 대개 우리가 그로부터 빠져나왔기 때문이며, 그래서 행복하다고 말하기 위해서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들에 관해 말하기를 원하는 순간, 우리가 말하는 대상인 그들의 사회적 정당성 박탈 상태를 다시 공고히 하게 된다. 그들에게 지칠 줄 모르고 덧씌워지는 그러한 위상을 고발하기 위해 말하는 것임에도 말이다.
--- p.109~110

 

마지막에 이르러 에리봉은 그가 아버지와 대화를 통해 그동안의 마찰을 풀어볼 시도를 하지 않았던 것을 후회한다.

한 소설을 인용하며 그 또한 고향으로 '되돌아가', 즉 아버지에게 '되돌아가' 자신이 만들었던 노동자 계급으로부터의 경계를 허물지 못했던 것을 말이다.

확실한 것은, 이 소설의 결말에 이르러 아들이 아버지에 대해 그간 느끼지 못했떤, 아니 어쩌면 단지 잊고 있었을 뿐인 사랑의 감정을 되찾지만 그 순간 아버지가 사망했음을 알게 되는데, 그때 내 눈에서 눈물이 솟아났다는 것뿐이다. 내가 울었던가? 그런데 무엇 때문에? 누구 때문에? 소설 속 인물들 때문에? 내 아버지 때문에?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아버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를 다시 만나지 않은 것이 후회스러웠다. 나는 왜 그를 이해해보려고 하지 않았던가. 과거에 나는 왜 그와 대화해보려고 하지 않았던가. 사회세계의 폭력이 그를 이겼던 것처럼, 나를 이기도록 내버려두었던 것을 후회했다.

 

 

 

다음은 출판사 서평

 

노동 계급 가족을 떠났던 한 사회학자의
극단까지 밀어붙인 자기 분석



“자전적 기록과 비판 이론의 걸작!”_노동계급연구회 저술상 선정평 중에서

“이 책이 지닌 놀라운 힘의 중심에 있는 것은 계급적·성적 수치심사회적 지배 체계의 유지에 끊임없는 동력을 제공한다는 점을 폭로하기 위해 에리봉이 자신의 삶을 이용하면서 보여주는 불굴의 정직성과 비상한 통찰력이다.”_조지 천시(역사학자)

푸코 평전 및 레비-스트로스와의 대담집 등을 펴내고, 성적 지배 체계와 소수자의 정체성 문제를 탐구해온 프랑스의 사회학자 디디에 에리봉의 회고록 『랭스로 되돌아가다』(2009)가 출간되었다. 이 책은 동성애자이자 지식인으로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동자 계급 가족을 떠났던 저자가,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자신과 가족의 계급적 과거를 탐사해나가는 여정을 담고 있다. 에리봉은 스스로를 분석의 대상으로 삼아, 계급적 정체성과 성 정체성이 교차되고 갈등을 빚는 모습을 예리하게 파헤친다. 동성애자로서 스스로를 정체화했던 그는, 오랫동안 부정하고 멀어지고자 했음에도 불구하고 계급이라는 과거의 인장이 결코 지워지지 않은 채 남아 있으며, 그러한 부정의 과정이 현재의 그를 빚어낸 과정과 뗄 수 없이 맞물려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책은 사회적 지배질서와 정상성의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방식과 그 영향 아래 개인의 주체성이 형성되는 과정을 훌륭하게 포착해내고, 교육의 재생산 효과와 프랑스 지성계의 뿌리 깊은 계급성을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지식 장을 넘어 일반 독자층에게도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랭스로 되돌아가다』는 프랑스에서뿐만 아니라 영미권, 동유럽과 북유럽, 남미, 아시아 국가들에서 잇따라 번역되며 호평을 받았다. 특히 독일에서는 1년 만에 8만 부가 팔리며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그러한 반향은 출판계를 넘어 예술계에까지 이르렀는데, 2014년에는 프랑스 연출가 로랑 아타가 이 책을 각색해 아비뇽 연극제에 올렸고, 2017년에는 ‘사회학적 연극’으로 유명한 연출가 토마스 오스터마이어가 공연 작품으로 만든 후 독일은 물론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서 현재까지도 상연을 거듭하고 있다.
또한 에리봉은 2008년 예일대학 LGBT 연구위원회에서 수여하는 ‘브러드너 상’(주디스 버틀러, 이브 세즈윅, 조지 천시 등이 이 상을 받았다)을, 2019년 영미권 국제학회인 노동계급연구회가 수여하는 제이크 라이언 저술상을 받았다.
한편 자기 자신을 객관적인 분석의 재료로 삼아 일종의 ‘사회 분석’을 시도하는 이 책의 글쓰기 형식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몽테뉴에서 사회학자 부르디외, 소설가 아니 에르노에 이르기까지 ‘자기에 대한 쓰기’와 관련해 오랜 전통을 갖고 있는 프랑스에서, 에리봉의 이 책은 자기기술지/오토픽션에 대한 논의에서 중요하게 언급되는 작품으로 꼽히게 되었다. 또한 정상성 규범의 억압 속에서 자신만의 진실을 탐구하며 스스로를 재발명해나가는 소수자의 글쓰기 사례로서도 숙고할 만한 모범을 제시한다.

->(내 생각) 이 책을 읽고 나서 소설가 아니 에르노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고 겪는 모든 것들은 우리 과거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그 영향이 부정적인 것일수록 무의식 속에서 과거에 발목잡히는 행동이 튀어나오게 된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이런 생각을 희미하게 하며 자기에 대한 쓰기를 시도했었다. 비록 시도는 서툴렀지만 그렇게 나에 대해 쓰기를 몇 번 해본 결과 이전보다 내 자신에 대해 명료한 생각을 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노동 계급의 탈주자와 게이로서의 자기 발명

이야기는 디디에 에리봉이 아버지의 죽음 이후, 스무 살에 떠나온 후 30년 동안 한 번도 돌아가지 않았던 고향 ‘랭스’(파리 교외)로 어머니를 방문하며 시작된다. 저자는 아버지가 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도, 심지어는 아버지의 장례식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도 찾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만큼 아버지에 대한 증오는 뿌리 깊은 것이었다. 아버지는 그 시대 노동자 계급의 화신과도 같은 인물로, 자신이 되고 싶지 않은 모든 것을 결합해놓은 것 같았다. 롤랑 바르트가 어머니의 죽음 후 깊은 절망에 빠져 그 절망이 그의 존재를 변화시킬 지경이었다고 기록했던 것과는 달리, 에리봉은 아버지의 죽음이 그다지 고통을 안겨주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그보다는 일종의 혼돈을 불러왔는데, 이는 그동안 잊었다고 믿고 있었던 이미지들을 깨어나게 하여, 아버지를 그토록 미워하게 된 이유를 생각해보게 하고, 계급 분화와 사회적 요인들이 주체성 구성에 미치는 영향과 같은 질문들을 연이어 촉발시켰다.
이 책을 쓰기 전까지 에리봉은 가족과의 단절이 자신의 동성애 성향과, 아버지와 자신의 성장 환경 밑바탕에 깔려 있는 동성애 혐오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사유하기 위한 틀로 설정해왔다. 그는 가족과의 단절출신 배경과의 계급적 단절이기도 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고 고백한다. 에리봉은 자신이 왜 그러한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 질문하며, 자신의 주관적 경험을 재료 삼아 전체 사회 안에서 노동자 계급이 처한 상황과 그것이 재생산되는 구조를 그려낸다. 그리고 그러한 환경에서 성장한 노동자 계급의 자녀들은 어떠한 궤적을 따라 성장하게 되는지, 그 안에서 이중의 소외를 겪는 자신과 같은 동성애자에게는 어떠한 선택지가 주어져 있었는지 이야기한다. 에리봉은 자신이 사상적으로는 좌파임을 자임하면서도, 현실에서는 노동자 계급 가족을 외면하고 부끄러워했다고 말하는데, 이렇듯 스스로의 이중성을 분석하는 데 있어서나 동성애와 계급의 교차성 문제를 사고하는 데 있어서 에리봉은 뛰어난 통찰을 보여준다. 또한 프랑스의 신자유주의화와 제도권 좌파의 역사적 변질이 어떻게 노동 계급의 보수화와 외국인 배척, 그리고 극우 정당 지지로 이어지는지에 대해서도 설득력 있는 해석을 내놓는다.

“나 자신의 인류학자”가 되어…
: 사회 분석으로서의 자기 분석


『랭스로 되돌아가다』의 글쓰기 형식은 각별한 주목을 요한다. 에리봉은 자신이 이 책에서 시도한 글쓰기를 이후 ‘사회학적 자기 성찰’이라고 이름 붙인 바 있다. 그는 노스탤지어나 나르시시즘적인 자기 고백으로 빠져드는 통상적인 자서전의 서술 방식과는 철저히 거리를 두고, 사회적인 것이 개인적인 것을 어떻게 구성하는지 보여주는 자기 분석을 위해 개인적 경험의 서사를 이론과의 긴밀한 왕복 운동 속에 투입한다. 흥미롭고도 가슴 아픈 가족의 이야기를 마치 소설처럼 들려주다가, 이를 곧장 분석대에 올려놓고 해부의 칼을 들이대는 에리봉의 모습은 간혹 당황스러울 정도로 냉정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애초 그가 이 책을 이론서로 기획했다가 출판사의 반대로 가독성이 좋은 지금과 같은 형태로 구성해냈다는 뒷이야기를 생각하면 놀라운 일은 아니다. 에리봉은 자기 자신 역시 억압적 제도의 산물로서 사회와 여러 차원에서 존재론적으로 공모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그 계급을 떠나온 이상 이제는 외부자로서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자신을 구성하는 지배의 논리를 객관화하고 그것을 끊임없이 해체하려고 시도한다.

불가능한 귀환의 시도

“되돌아가다”라는 제목처럼, 오래전 자신이 부정하고 떠나온 그 자리로 다시 돌아가, 연구자로서 객관화와 거리두기를 실천하며 성공적으로 자기기술을 한다는 것은 어디까지 가능한 일일까. 에리봉은 다른 책에서, 어머니와 형제들이 『랭스로 되돌아가다』를 읽고 이 책이 가족의 진실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고 불평했던 사실을 털어놓았다. 옮긴이가 이야기하듯, “어쩌면 귀환은, 아예 불가능하지는 않을지라도, 실패의 흔적들로서만 실현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책이 거둔 성취는 무엇보다도 “예정된 실패를 구현하면서도 귀환의 (불)가능성에 끝까지 도전했다는 데 있을 것”이다.
디디에 에리봉의 이름은 부르디외, 푸코 연구자나 사회학을 공부하는 이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만, 그렇지 않은 독자들에게는 다소 낯설 수 있다. 이전의 에리봉의 저서들과 비교하면 상당히 쉽게 쓰여 있고, 일견 소설처럼 읽혀 관련 지식이 없는 독자들도 흥미롭게 접근할 수 있는 텍스트이지만, 이 책을 보다 깊이 이해하고 싶다면 이상길 교수의 「옮긴이 해제」를 읽어보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상길 교수는 이 책의 바탕이 되는 사회학, 철학 이론 들과 사회적 배경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들려줄 뿐만 아니라, 에리봉의 지적 여정 전체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보여준다. 또한 특정 학문이나 사상, 인물과 관련하여 책에서 분명하게 표현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도 부가적인 해석을 덧붙여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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